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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08-07-17 (목)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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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59.xxx.96
우천 조완구 선생 유언
1953년 5월, 평양에서 병으로 별세하시면서 임종을 지켜보는 동지들 앞에서...상해임시정부시절 그를 가장 가까이 따랐던 안우생(안중근의사조카)독립투사를 가까이 불러앉히고 눈물 흘리시며...남긴 유언.


 
우생이,과거가 왜 이렇게 허무하게 생각되지. 지난 40여년동안 한 일들이 말이지. 누가 시켜서 한일도 아니고 오직 우리 자신들의 결심에 따라 떨쳐나서 이국만리 대륙의 도시와 촌락을 헤매고 다니며 오직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행복을 찾겠다고 싸운 것인데 그것이 오늘은 왜 이렇게 허무하게 생각되는지 모르겠네. 오늘의 이런 현실을 보면, 죽자고 40여년을 싸웠는가 하고 생각하니 정말 허무하고 마음아프기만 하고 서글프기만 하오........... 우리 한독당을 지켜다오. 당간판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한이야. 통일을 못보고 가는 것이 한이야........

 조완구(趙琬九, 1881년 3월 20일 ~ 1952년)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호는 우천(藕泉)이다. 홍명희의 고모부이다.

1880(고종 17)∼1955. 독립운동가. 호는 우천(藕泉). 서울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내무주사직을 사직하고, 10년 국권피탈 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동지사(同志社)를 결성하였다.
일찍이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해 1915년 5월 대종교를 포교할 목적으로 북간도 용정(龍井) 일대에 가서 수많은 동포를 상대로 약 3년간 선교활동에 종사하였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약소국가들이 독립을 선포하자,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조성환(曺成煥)·김동삼(金東三)·조영진(趙英鎭) 등 30여 명과 같이 상해(上海)로 갔다.

1919년 3·1운동이 국내에서 일어나자 4월 상해에 1,000여 명의 독립동지가 모였을 때, 그도 동지들과 같이 상해로 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1919년 9월 11일 의정원회의에서  대통령 중심제로의 개헌을 주선해서 단일 통합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출범하게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하나의 정통 정부로 통합되자  이어 1920년 9월 내무차장, 1921년 임시정부 내무총장,  1923년 상하이 한국인거류민단의사회 의사장, 1924년 노동총판이 되었다

프랑스 조계(租界) 내 김신부로(金神父路) 22호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이래, 1945년 11월 중국 충칭(重慶)으로부터 귀국할 때까지 27년간 지조를 지키면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그는 안창호(安昌浩)가 미주에서 도착하기 전에 국내와의 교통 통신을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교통국을 설치하였다. 또 임시의정원 의원과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발전, 고수하는데 노력하였다.

또한, 신규식(申圭植)·이동녕·김백련(金白連)·백순(白純)·정신(鄭信)·박찬익(朴贊翊) 등과 함께 상해에 대종교의 교회를 설립, 운영하였다. 국무원의 수석위원으로 구황실(舊皇室) 우대론을 펴서 20대와 30대 초반의 신식대학교육을 받은 동지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여운형(呂運亨)·김진우(金振宇)·장붕(張鵬) 등 의정원의원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노동국을 농무부, 노동국총판(勞動局總辦)을 농무총장(農務總長)으로 바꾸는 개정작업을 펴서 성사시켰다.

1920년 10월 교민단(僑民團)을 이유필(李裕弼)·김구(金九)·여운형·김철(金澈) 등 20여 명과 조직, 재상해거류민의 자치와 권익 옹호에도 앞장섰다.

1921년 12월 이동녕·신규식·이시영·윤기섭(尹琦燮)·황중현(黃中顯) 등 10여 명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과 이승만(李承晩)을 옹호하기 위해 협성회(協誠會)를 조직, 임정 반대세력 정구단(正救團)과 대결하였다.

1924년 7월 이동녕·안창호·여운형·신익희(申翼熙)·김용철(金容喆)·이유필·조상섭(趙尙燮)·송병조(宋秉祚)·이강(李剛)·조덕진(趙德津)·김붕준(金朋濬)·이규홍(李圭弘)·윤자영(尹滋英) 등 20여 명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 일명 韓國獨立時事策進會 : 포석로 안창호 자택)를 조직하였다.
 
1931년 11월 중순경 상해에서 한국측 인사 김구·김철·조소앙(趙素昻)·이유필·안경근(安敬根) 등과 중국측 인사 우쳉칸(伍澄干)·주쿵모(周公謨) 등과 같이 중한항일대동맹(中韓抗日大同盟, 일명 中韓民族抗日大同盟)을 조직, 항일투쟁을 중국과 연합해 전개하였다.

유근(柳瑾)의 추도회를 이동녕·최창식(崔昌植)·김인전(金仁全) 등 10여 명과 같이 상해 한국동포 거류민단 사무소에서 개최하였다. 그는 이승만 지지파로서 한국독립당을 조직했고 재건한 바 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尹奉吉) 의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장으로서 이동녕·김구·조소앙·김철 등과 함께 극비리에 훙커우(虹口)공원 투탄의거를 수행하였다.

이에 앞서 이봉창(李奉昌)의 의거에도 가담해 활동하였다. 윤봉길 의거로 인해 이동녕·이시영·김구 등과 함께 박찬익·민석린(閔石麟)의 도움으로 자싱(嘉興)·항저우(杭州) 등지로 피신하였다.

광선조직(光線組織)에 기여한 그는 이동녕·김구 등과 같이 1935년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을 전장에서 결성, 광복전선(光復戰線) 결성에 참여하여 난징[南京]에서 전단·표어 등을 배포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1936년 김구(金九)·이시영(李始榮)과 함께 한국국민당  결성을 주도하였다  뒷날 한국독립당으로 합류하였다.

1943년 김원봉(金元鳳)의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황민(黃民) 등 10여 명의 청년들이 김구의 경호대원 박수복(朴守福)을 매수, 김구와 조완구 등 5명의 국무위원의 암살기도를 사전에 정보를 입수, 적발해 전원을 체포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임시정부 국무위원 자격으로 김구 등과 같이 귀국하였다.그 후 한국독립당 비서부장으로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비상국민회의 재무위원장,  민주의원회 의원, 좌우합작위원회 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회 의원 등의   직책을 맡으면서 중앙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신탁통치반대·남한단독정부수립반대등 시종 김구의 중립노선을 따랐으며,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에 참여하여 남북15요인회담의일원으로 활동하였다.

6·25동란 때 납북되어 1952년 5월 평양에서 별세하시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騎驢隨筆
≪참고문헌≫ 獨立新聞
≪참고문헌≫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東文社書店, 1946)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4·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5)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 2·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참고문헌≫ 大韓民國臨時政府史(李炫熙, 集文堂, 1982)
≪참고문헌≫ 3·1獨立運動과 臨時政府의 法統性(李炫熙, 東方圖書, 1987)
≪참고문헌≫ 獨立有功者功勳錄 5(國家報勳處, 1988)
≪참고문헌≫ 韓國近代民族運動史硏究(愼鏞廈, 一潮閣, 1988)
≪참고문헌≫ 大韓民國獨立有功人物錄(國家報勳處, 1992)
≪참고문헌≫ 國民黨政府與韓國獨立運動史料(中央硏究院, 1990) 
 

- 우천 조완구 선생 "사진자료" -

 

1935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앞줄 좌측 첫 번째 - 조완구선생 )


 

1937. 특수한 임무를 띠고 떠나가는 동지의 장도를 축하하는 임정 요인들.

중일전쟁이 중국 전토로 확대되어 혼란한 와중에서도 적군내 한적사병에 대한 선무공작,

적후방 교란 등의 특무공작을 진행했었다.

[앞줄왼쪽 : 송병조, 이시영, 백범 선생, 이동녕, 엄기순(엄항섭선생1녀), 조완구선생.

뒤줄왼쪽 : 엄항섭, 양소벽, 김붕준, 안공근 , 차이석, 조성환]

 
 
광복 후 1·2진으로 나눠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1945년 12월 3일 경교장에서 국무회의 직후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 두번째가 조완구선생,  네 번째가 김구선생...
 

  

                                              우천 조완구 선생 "어록비" (* 소재지 : 독립기념관內) 


이름아이콘 초막거사
2008-07-22 17:41
우천 조완구 선생님의 뜻에 충실하게 따르는 대종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하의 우천 선생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인지 아닌지를 잘 생각해서 일을 반듯하게 처리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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