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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원짠돌이
작성일 2011-03-15 (화)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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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족보에서 풍양조씨 관련 글 인용
“... 양주(楊州)라는 지명은 한양(漢陽), 남평양(南平壤), 풍양(豊壤) 등의 다른 이름을 가졌다. 겉보기에는 이것들 간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범어(梵語)로 발음할 때 ‘버들’, 또는 ‘버들가지’로 들려 모두 한자 표기인 ‘버들 양(楊)’으로 통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성씨의 본관 지명에서도 나타나는데, 양주 지역과 관련하여 그 대표적인 예가 조씨(趙氏)의 경우다.
고려 개국공신 조맹(趙孟)은 고려 태조가 내린 이름이다. 그가 풍양에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풍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풍양은 경기도 양주군에 있던 지명이다. 한양 조씨의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 중엽에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순대부첨의중서사(朝順大夫僉議中書事)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개국 때 조인옥(趙仁沃), 조온(趙溫), 조영무(趙英茂) 등이 공신으로 활약하였는데, 거주지를 따라 본관을 한양으로 하였다. 양주 조씨나 평양 조씨도 이름만 다를 뿐 모두 한양을 근거지로 한 조씨들이다. 그러나 본관을 한양으로 하였더라도 모두가 다 조지수의 후손은 아니다.
조씨들의 본관지인 한양, 양주, 양주의 속현인 풍양, 그리고 (알려진 상식과는 달리) 평양 등은 위에서 보았듯이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 ‘양주’ 한 곳을 나타낸다.... 이들의 본관 지명이 이와 같이 구별되는 이유는 각기 사성(賜姓) 당시의 지역 명칭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주 지역의 이씨들과는 달리 양주 지역의 조씨들은 비록 이칭의 본관을 사용하였지만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서로가 동일 조상의 후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의 분화는 조선 중기 이후 상계(上系)에 대한 이해가 갈리면서 시작되었고 특히 족보 작성과 연계되어 각기 별도의 족보를 만듦으로써 별개의 씨족 단위로 고착되어간 듯하다. 양주와 그 별칭들을 지명뿐만 아니라 씨족의 본관 명칭으로도 인기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의 중심지인 한양과 그 주변에 터전을 둘 수 있었던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이를 가능케 한 것이다....”

정승모, 한국의 족보,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0년, 32-33쪽

이상 조용훈이 입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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