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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계자
작성일 2010-09-08 (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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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공 조운흘선생의 시 5편
 석간 조운흘선생은 아래 작자 소개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마는 고려말 조선 초기에 유명한 학자이며 정치가로서 많은 에피소드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후손이 없어 선생의 업적을 천양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선생은 우리 풍양조씨의 시조와 역사를 최초로 가르쳐준 분으로 이 분이 없었다면 우리 시조와 고려시대 세계도 모를 뿐 하였습니다. 곧 이분의 업적을 기술한 고려의 정사인 <고려사 열전>에 시조가 개국공신 문하시중 휘 맹孟이라고 하였으므로 역사상 풍양조씨의 시조가 누구인 줄 알게 한 분이다. 이분은 우리와 족보를 따진다면 우리와 동조인 4세 휘 정晶의 증손자로서 7세인 회양공 휘 신愼과 6촌 종반 간이다.  

 이분의 일화는 숱하게 많고 문학가로서 당대에 널리 알려졌으나 무후가 되어 그 문학 작품인 시, 다음 5편이 <동문선>에 겨우 실려 전할 뿐이고 그의 묘는 아차산에 있었다고 하나 실전 되었으니 우리는 그분의 방족손으로 여유가 된다면 학자들의 고증을 얻어 그분의 묘자리를 찾아 성역화시켜 주든가 아니면 허단이라도 설치하여 업적을 기리게 하는 조형물을 만들어 놓으면 그 분도 빛이 나고 우리 족후손들도 더욱 그 후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어느 서적인가 보았는데 그분의 묘터는 근래까지 있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방족후손 면희는 삼가 씀    

                    석간선생시石磵先生詩 5편

                                        작자 : 조운흘趙云仡
                                        번역 : 조면희趙冕熙
                                                         출전 : <동문선東文選>

(一) 송춘일별인送春日別人

謫宦傷心涕淚揮。送人兼復送春歸。
春風好去無留意。久在人閒學是非。

*풀이 : 봄을 보내는 날(음력 3월 그믐)에 사람일 이별함.

지방으로 좌천된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는데
사람 떠나보내고 또 봄도 함께 돌려보내네.

봄바람아! 잘 가고 머물생각 하지 말려무나.
인간 세상에 오래 있다 시비하는 일 배울라.

*적환謫宦 : 관리(官吏)가 죄에 걸려 폄척(貶斥)받아서 좌천(左遷)되는 것을 말한다. 내직에서 외직으로 발령되어 지방으로 나갈 때 스스로 낮추어 말하기도 함.

(二) 유금강산遊金剛山

金剛山下雨中遊。白石入雲山無頭。
更宿山中夢泉寺。松風半夜鳴颼颼。

*해설 : 금강산에 노닐며

금강산 아래서 빗속에 노닐고 있자니
돌들이 구름에 묻혀 산봉우리가 없네.

산 속 몽천사 절에 하룻밤 더 자는데
밤중에 솔바람만 우수수 울려오는군.

(三)제구월산소암題九月山小菴

山中猶在戊辰雪。柳眼初開己巳春。
世上榮枯吾已見。此身無恨付窮貧。

*해설 : 구월산에 있는 작은 암자에 시를 써 놓음

산 속에는 아직 지난 무진년 눈이 남았는데
버들눈은 올 기사년 봄인 지금 겨우 터지네.

세상의 영화와 쇠퇴를 내 이미 다 겪어보았으니
이 한몸 가난과 곤궁에 처한 것쯤 한탄하지 않네.

(四) 즉사卽事

柴門日午喚人開。徐步林亭坐石苔。
昨夜山中風雨在。滿溪流水泛花來。

*해설 : 보고 생각나는 대로 읊음

한낮쯤에 아이 불러 사립문 열게 하고
천천히 숲에 거닐다 이끼낀 돌에 앉았네.

어젯밤에 산 속에서 비바람 있었는가?
시내 가득 흐르는 물에 꽃들이 떠오네.

(五) 제운금루題雲錦樓

雲錦樓前雲錦臺。醉看雲錦滿池開。
世閒豈有千年術。日擁笙歌倒玉盃。

*풀이 : 운금루에 시를 써 붙임

운금루 누각 앞에 운금대란 누대가 있는데
취한 눈에 비단구름이 연못 가득 펼쳐졌네.

세상에 천년 살 수 있는 방법이 어찌 있으랴?
날마다 피리불며 노래하고 술잔이나 길우려네.

*작자소개

조운흘(趙云仡) : 1332년(충숙왕 복위 1)∼1404년(태종 4).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평장사 맹(孟)의 13대손이다.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이며,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고, 합문사인(閤門舍人)을 거쳐서 1361년에 형부원외랑에 올랐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남쪽으로 피난하던 왕을 호종하여 1363년에 2등공신이 되었다. 이듬해 국자감직강이 되었고 이어서 전라·서해(西海)·양광(楊廣)의 삼도안렴사(三道按廉使)를 지냈다.

1374년 전법총랑(典法摠郞)으로서 사직하고, 상주 노음산(露陰山)기슭에 은거하면서 스스로 석간서하옹(石磵棲霞翁)이라고 하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소를 타고 다녔다. 이때 〈기우도찬 騎牛圖贊〉·〈석간가 石磵歌〉 등의 시를 지었다.

1377년(우왕 3) 다시 등용되어서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가 되고,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 있다가 1380년에 사임하고, 광주(廣州) 고원강촌(古垣江村)으로 퇴거하였다. 그곳에서 판교원(板橋院)·사평원(沙平院)을 중수할 때 스스로 원주(院主)라고 일컬으면서 떨어진 옷과 짚신으로 역부들과 함께 일하였다.


1388년 다시 전리판서(典理判書)로 기용되고, 밀직제학(密直提學)에서 서해도관찰사로 내려가서 왜구를 토벌하여 치적을 올렸다. 이듬해에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에 오르고, 1390년(공양왕 2)에는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그러다가 1392년 조선개국 후에 강릉부사로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칭병으로 사직하고, 광주로 내려갔다가 다시 검교정당문학(檢校政堂文學)이 되었다.

그뒤로 관직에서 떠나 여생을 보내다가 스스로 묘지를 짓고 73세에 죽었다. 그가 남긴 저서로 《석간집 石磵集》이 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편서로는 《삼한시귀감 三韓詩龜鑑》이 전하는데, 이는 최해(崔瀣)의 《동인지문 東人之文》 중에서 〈오칠 五七〉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최해의 비점(批點)이 그대로 실려 있다.

그밖에 현전하는 작품으로는 5수의 칠언절구가 《동문선》에 보인다. 〈제구월산소암 題九月山小庵〉·〈송춘일별인 送春日別人〉등의 시편을 살펴보면, 현실참여와 은둔 사이에서 고민하며 이를 자연을 매개로 해결하고자 하는 흔적이 나타난다.

현실 비판의식은 눈에 띄지 않지만, 그의 생애가 말해주듯, 고려말 전환기에 선 지식인의 형상이 잘 그려져 있는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결국, 그는 저작이 거의 인멸되었기 때문에 고려말 조선초의 대표적인 문인으로서 그의 존재가 선명히 부각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자소개는 인터넷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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