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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계자
작성일 2011-09-02 (금)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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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군에 관련된 시문
한평군에 관한 시는 본인이 찾은 고문 중에 유일한 작품임.

하한평군조이원배경상우도절도사.
賀漢平君趙而元拜慶尙右道節度使.  

                         작자 : 허백정 홍귀달虛白亭 洪貴達
                         번역 : 청계자 조면희淸溪子 趙冕熙
                                      출전 : <허백정문집虛白亭文集>

대동인물성당시, 문무전재부유수?
大東人物盛當時。文武全才復有誰?

윤묵조주진소유, 고아대독시남아.
吮墨調朱眞小技。高牙大纛是男兒。

*해설 : 경상도 절도사로 제수되어 나가는 한평군 조이원을 축하함

큰 동쪽나라의 인물들이 번성한 오늘날이지만
문무를 겸해 가진 이가 당신 말고 누가 있소?

글씨 쓰고 문서를 다루는 일은 작은 기술이고
장군의 큰깃발 앞세운 행차가 훌륭한 남아라오.

*조익정(趙益貞) : 1436(세종 18)∼1499(연산군 5).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이원(而元). 회양부사(淮陽府使) 신(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조좌랑 안평(安平)이고, 아버지는 한산군(漢山君) 온지(溫之)이며, 어머니는 예빈시판사 오축(吳軸)의 딸이다.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65년(세조 1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1466년 ≪동국통감≫의 편찬에 수찬낭관으로서 참여하였다. 1467년 예문관봉교·승정원주서를 지냈고, 1468년(예종 즉위년) 10월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469년 사헌부지평·행세자시강원문학을 거쳐 춘추관수찬관으로 ≪세조실록≫ 편수에 참여하였고, 1470년(성종 1) 형조참의가 되었다. 1481년에 한성부좌윤으로 한평군(漢平君)에 봉하여지고, 이듬해 이조참판이 되었다. 1489년 호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다시 대사헌·예조참판·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1494년 12월 사은사에 배명(拜命)되었으나 성종의 죽음으로 중지하였다.

1495년(연산군 1) 한성부좌윤, 같은해 8월 공조참판, 1498년 오위도총부부총관을 겸임하고, 1499년 춘추관동지관사(春秋館同知館事)로 ≪성종실록≫의 편수에 참여하였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문장이 뛰어나 성종 대의 문예에 공헌하였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약력 인터넷 인용--

*홍귀달선생은 대재학을 역임한 대학자로서 우리 풍양조씨 전직공파 12세 청도공 휘 종돈의 처조부이다.    

*작자소개
홍귀달 [洪貴達, 1438~1504] : 본관 부계(缶溪). 자 겸선(兼善). 호 허백당(虛白堂) ·함허정(涵虛亭). 시호 문광(文匡). 1460년(세조 6) 강릉별시(江陵別試) 문과에 을과로 급제, 1464년 겸예문(兼藝文) ·예문관 봉교(奉敎), 1466년 세자시강원 설서 ·선전관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공을 세워 이조정랑에 오르고, 1469년(예종 1) 장령으로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직제학 ·동부승지를 지내고, 1479년(성종 10) 도승지로서 연산군의 생모 윤씨(尹氏)의 폐비(廢妃)에 반대하다가 투옥되었다. 1483년 왕명으로 《오례의주(五禮儀註)》를 개정했고, 충청도관찰사, 형조와 이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그 후 경주(慶州)부윤 ·대사성 ·중추부지사 겸 대제학 ·호조판서를 지내고,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史禍) 때 좌참찬으로서 왕의 난정(亂政) 10여 조목을 들어 간(諫)하다가 좌천당하였다.

1500년에는 왕명으로 《속국조보감(續國朝寶鑑)》 《역대명감(歷代明鑑)》을 편찬하였고,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나, 1504년 손녀(彦國의 딸)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거역,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慶源)으로 귀양가던 도중 단천(端川)에서 승명관(承命官)에게 교살당하였다. 중종반정 후 복관되고 이조판서를 추증받았으며, 숙종 때 함창(咸昌)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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