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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계자
작성일 2011-11-02 (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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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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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xxx.8
종인의 질의에 대한 답
본 글은 본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질의로 올린 내용인데 종인들도 알아둘만한 내용이기에 여기에 질의한 내용과 답한 내용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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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내용
인터넷 문경종친회에서 유익한 자료를 항상 참고하고 있습니다.

화천공 휘즙의 호 화천(花川)이란 호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 인지요? 또한 만오당이란 당호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요?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풍양조씨의 경우, 시호를 제외하고 벼슬이름이 아닌 호가 매우 드믑니다.

  시호:  한산군, 한평군, 풍안군, .... 극히 일부
  당호, 아호:  풍옥헌공, 귀로헌공, 만오당공, 독암공, 창강공, 운애공,.... 극히 일부
  벼슬이름:   시중공, 회양공, 진사공, 청도공, 좌랑공, 증참판공, ... 대다수

한편, 조선시대 충청지역의 역참 중에 화천(花川)이란 곳이 있었습니다.

문의하는 사람은 귀로헌공의 후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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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한 내용

X 종인님!
답이 너무 늦어 미안합니다.

사실은 제가 게을러서 지금에야 질의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X 님이 귀로헌공의 후손이라면 귀로헌공은 우리 화천공의 삼촌이니 제14세 조상이 형제분이tlrh 13t세 정권할아버지의 같은 후손이므로 지금 저 29세인 희熙희자자 돌림에서 촌수를 따진다면 16대가 벌어졌으니 32촌밖에 안됩니다. 가까운 종인입니다.

첫째 : 옛어른들의 분파와 명칭을 따질 때 어떤이는 시호를 어떤이는 아호를 어떤이는 최종 직함을 명명해 부르는데 그것은 가장 잘 알려진 명칭을 쓰려다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둘째 : 시호는 유공자로서 2품이상의 벼슬을 지낸 분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에서 호를 지어 내리는 가장 명예스러운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시호로 파명을 정하는 것은 가장 좋은 명칭이지요.

셋째 : 아호는 당사자가 살아계실 때 시문을 많이 남긴다든지 하면 자연히 그 시문에 호를 쓰게 되고 그 호가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호를 파명으로 쓰는 것은 분파의 구분이 쉽고 또 그분의 생전에 시문 활동이 많았다는 증거도 됩니다. 그래서 파명으로 정하였을 듯합니다

넷째 : 직함으로 파명을 정한 경우 아호가 뚜렷이 알려져 있지 않고 그래서 뒷 자손들이 그분의 최고 직위를  따서 명칭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다보니 겹친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면 좌랑공파. 지제공파. 참판공파 등이 있으나 벼슬이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다른 파와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섯째 : 그리고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은 대체로 처사공. 또는 학생공 등으로 명명합니다.

여섯째 : 아호는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자신이 짓는데 자신의 서제의 명칭을 따서 헌이니 당이니 하고 짓는경우가 있습니다. 만오당께서도 벼슬이 공조참판까지 하였으나 당호로 부른 것은 다른 파와 구분하기 위해서일 뿐아니라 만오당晩悟堂라는 뜻은 아마도 늦게 깨달았다는 뜻으로 서재에 그렇게 붙이고 아호로 삼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귀로헌歸老軒 공도 당시 광해군시대에 뜻을 잃고 김포고향에 '돌아가서 조용히 늙겠다'라는 뜻으로 아마도 귀로헌이라는 정자를 지었지 싶습니다.

화천공은 뚜렷하지 않으나 어려서부터 하회 유성룡선생에게 글을 배우느라고 그쪽에 가서 공부를 하였으니 하회마을 앞에 흐르는 물이름이 화천花川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공부하던 장소인 화천을 따서 지은 듯합니다. 화천공은 유성룡의 지도를 받아 임진왜란 나던해 급제하고 바로 벼슬길에 나아가 청한직을 두루 겪었는데 그때 삼촌들도 내직으로 모두 있었으나 광해주 때에 와서 유성룡의 세력이 약화되자 왕조실록에 보면 화천공이 유성룡의 힘을 믿고 삼촌들까지 조정에 끌어들였다고 논박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게다가  인조반정이후 동지성절사로 다녀와 동부승지가 되지만 서인들의 논박으로 곧 외직으로 나갑니다. 그리고는 남인의 편으로 분류되어 아드님이신 만오당도 계속 논박을 받아 외직으로 전전하게 됩니다. 뒷날 공조참판까지 하기는 하였으나 크게 대성하지 못한 계기가 되었고 그 후손도 빛을 못 보았습니다.

그리고 독암공파의 후손은 서인편으로 분류되기는 했으나 크게 발전하지 못하다가 19세 경상관찰사 엄儼할아버지 이후  풍원부원군 만영할아버지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종식시킨이후 대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사랑공 후지파에서 풍양군으로 내려오며 서인중에 우의정 동강공이 청교파의 거두가 되어 득세하다가 효순왕후가 영조의 며느리가 되면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이상이 제가 아는 대로 기술한 내용인데 혹시 종인들의 상식에 도움이 될까하여 좀 자세히 적었습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 잡도록 누구라도 충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1. 11. 2.  제29세 종말宗末 면희冕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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