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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계자
작성일 2010-12-05 (일)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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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학자가 본 중국 천단의 모습

본인이 천단의 사진을 여기 올리고 보니 사진이 없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물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나타냈겠지만 옛날 학자들은 주로 기행문이나 시로 표현하였었다.

 본인이 지난 8년 전에 동지상사로 북경에 다녀온 14대 조의 연행록과 시를 번역한 일이 있는데 이 어른이 본 천단의 모습을 기술한 글과 시만을 뽑아 여기 올립니다.

 그리고 이 글은 단행본으로 만들었으나 조상의 글이라서 비매품으로 인쇄하였기 때문에 서점에서는 찾을 수 없고 각 도서관에는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웹주소의 고전 번역 난에 실려 있으니 전문을 보시려면 거기서 다운 받아 볼 수 있습니다.

   *www.choseo.pe.kr <초서 및 한시 연구>, ‘고전번역작품’난.

  *당시 상항과 역사적 배경 및 국문학적 가치는 이글 끝에 요약하여 올렸습니다.

                                               필자 백      

            옛 학자가 본 천단天壇의 모습

       작자 : 화천 조  즙花川 趙  濈
       번역 : 청계 조면희淸溪 趙冕熙(작자 14대 손)
             출전 : <뱃길로간 북경기행 및 수창시>
                   원전 : <조천일승朝天日乘>과  <연행수창록燕行酬唱錄>

<一> 뱃길로간북경기행 (일기문임)                    
              (1623년 인조 1년)

윤10월 26일(임자), 맑음.

 듣자니 예부(禮部)에서 집무를 한다하기로 인사도 하고 국서도 드리려고, 주문사와 함께 갔으나 상서(尙書) 임요유(林堯兪)가 천단(天壇)에서 행사에 쓸 희생을 장만하는데 그것을 감독하러 갔다고 하여 곧 돌아왔다.
        --중약--

윤10월 30일(병진), 맑음.
  오늘 천자께서 천단(天壇)에 나오신다고 안팎 문을 전부 봉쇄하고 경계를 엄숙하게 하였다.
  *한글본 : 서울 사람의 집을 다 안으로 봉하고 사람도 나다니지 아니하였다.

                 11월

1일(정사), 맑음.
  어제 밤, 꿈이 매우 좋은 것으로 보아 무슨 좋은 일이 꼭 생길 것 같았다.

  아침에 황제가 환궁(還宮)하자 각 군영의 병사들이 경비를 풀고 봉쇄하였던 문들도 모두 열어주었다. 듣자니 황제가 궁궐에서 나와 천단에서 머무를 때에는 호위하는 군대와 경영도독부(京營都督府)의 소속인 20만 명의 병사가 사방에서 진을 치고, 경성(京城)의 12 문(門)에는 각각 3천 명의 병사가 지키기 때문에 성안에 사는 백성들은 비록 담장이 이어진 이웃끼리도 서로 왕래하지 못하고 집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단다. 그리고 또 황제가 거동(擧動)할 때나 경연(經筵,신하들과 경서를 강함)에 나갈 때도 정양문(正陽門)의 누각위에 있는 종을 1백 번씩 치기 때문에 서민들의 집에서도 황제의 거동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주문사(奏聞使) 등이 제독(提督)에게 글을 올려 나가서 구경을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여 허락을 받았는데 곧이어 달자(㺚子, 만주족)들이 들어왔다고 하면서 제독이 사람을 시켜 중지해 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달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었다.

 11월 2일(무오), 맑음.
  동지하례(冬至賀禮)를 오늘로 물렸기 때문에 4경(四更, 새벽 2시경)에 주문사와 함께 궁궐에 나갔다. 장안문으로 들어가 금천교(禁川橋)를 지나 승천문과 단문(端門)으로 들어가서 오봉문(五鳳門) 밖에 있는 동쪽 행랑에 쉬고 있자니, 천관(千官, 우리나라 백관과 같음)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조복(朝服)을 입고 또 등롱(燈籠)을 앞세우고 왔는데, 그 등롱이 큰 것은 대관(大官, 높은 벼슬)이고 작은 것은 소관(小官)을 표시한 것으로 등불을 가지고 계급을 구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관리들이 움직일 때마다 조복에 달린 패옥(佩玉)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쨍그랑쨍그랑하여, 가는 곳마다 귓속에 울려 퍼지었다.

  날이 곧 새려고 하자, 장관(將官, 장수)이 도끼와 철퇴  같은 무기를 들고 수놓은 옷 입고 투구 쓰고 바깥의 뜰에 나열해 있으며 군교(軍校, 장교)들은 창 들고 두건(頭巾) 쓰고 붉은 갑옷 입고 좌우에 늘어서 있었다. 푸르고 붉고 누른 3 가지색의 비단 부채 수천 자루가 모두 붉은 무늬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오봉문에서부터 단문까지 뜰로 통하는 길의 양쪽에 나열해 서있고, 또 6마리의 코끼리가 오색 무늬의 비단을 걸치고 양쪽에 서 있었다.

  금안장을 한 흰말이 쌍쌍이 앞에서 인도하고 황제를 태운 어연(御輦)이 누른 보자기를 입힌 코끼리에 끌려 내정(內庭)으로 들어갔다. 그런 뒤에 누각 위에서 큰북을 열번 정도 울리자 천관들이 차례로 내정으로 들어가 동서로 나누어 서로 마주보고 섰다. 또 종이 10여 번 울리자 많은 관리들이 데리고 온 하인들은 일시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안팎이 모두 엄숙한 분위기가 되어 시끄러운 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서반(序班)들이 우리나라 사신들을 인도하여 오봉문 입구의 북쪽에 가서 서쪽을 향하여 세웠다. 조금 있자니 붉은 무늬의 비단옷을 입은 사람 4명이 각각 긴 채찍을 들고 일시에 둘러치기를 3 번 하니, 여러 가지 악기들이 일시에 연주되었다. 곧 현악기와 관악기와 금석 악기의 은은한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이 들려왔다. 마치 구만리 높은 하늘에서 신선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것 같았다. 조금 뒤에 황제가 내정으로부터 교여(轎輿, 가마)를 타고 황극문(皇極門) 안에 도착하였는데 그 문은 2층으로 된 높은 누각이었다. 황극전(皇極殿)은 만역연간(萬曆年間)에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그 뒤로부터 이 황극문에서 행례를 한다는 것이다. 황극문 앞에 금수교(金水橋)가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백옥으로 깎아 만든 것 같았다. 천관은 차례대로 자기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과도관(科道官)과 감찰어사(監察御使)는 전(殿)에 올라 동서(東西)로 갈라서고, 예모관(禮貌官, 사회자)은 앞에서 천관들이 할 의식을 큰 소리로 외치는데, 천관들은 그가 부르짖는 창(唱)에 따라, 국궁(鞠躬) 사배(四拜), 평신(平身), 궤(跪: 꿇어앉음), 분향(焚香) 사배, 진홀(搢笏: 홀1)을 꽂음), 출홀(出笏: 홀을 손에 듦)을 순서대로 하고, 또 사배 삼고두(三扣頭), 삼무도(三舞蹈), 삼호만세(三呼萬歲: 3번 만세를 부름)를 하고 또 사배를 하였다. 의식이 끝나자 읍(揖)을 하고 물러났다.

 우리나라 사신은 오봉문 입구의 자리로 돌아와서 멀리 바라보며 예를 행하였다. 오직 한스러운 것은 작은 나라에 태어나서 오랑캐의 대접을 받는 것이었다. 이번에 새로 입게 된 홍포(紅袍)가 전보다는 조금 달라 다른 오랑캐들과 구별되기는 하였으나, 이것이 우리의 분수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서반(序班)이 동지사를 인도하여 광록시(光祿寺)로 가서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감찰어사가 그 잔치의 행사를 주관하여 주문사(奏聞使, 이경전 등)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이날은 황제가 친히 식장에 나왔기 때문에 의식에 쓰는 물자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고 관원들의 행사 절차도 매우 엄숙하여 아무리 눈이 내리는 날이라도 우비를 착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황제의 자포(赭袍, 자색의 도포)는 엄숙하고 엄숙할 뿐이다. 참으로 훌륭하고 위대한 의식이었다.

            ---중략---

  2월 3일(정해), 맑고 바람이 세참.
  동관의 주문사와 함께 천단(天壇)에 갔다. 먼저 물고기를 기르는 연못에 가서 유병(油餠, 기름으로 튀긴 떡)을 물에 던져 넣으니. 붉은 색 잉어들이 펄떡펄떡 뛰어올라서 받아먹었다. 그밖에는 별로 볼 것이 없었다. 다만 연못가에 있는 한 채의 집에 여자들이 가득 모여 있었는데 우리가 그곳을 지나가자 자신의 몸을 다 드러내고 나와서 보는 자도 있고, 방안에서 숨어서 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는 그들은 모두 아리따운 미인들이었다. 그곳에서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이어 천단으로 먼저 가는데 먼저 수직도사(守直道士, 문지기인 도사)의 집에 가서 쉬고 이어서 그에게 부채와 칼을 선물로 주어 첫 번째 문을 열도록 하였다. 두 번째 문에 가서도 수고비를 주고 들어갔다. 먼저 대향전(大享殿)에 가니, 그 전은 36 개의 기둥과 48개의 창이 있으며 그 전각은 3층으로 지붕은 둥글고 푸른색이었다. 이는 원(元)나라 때 지은 북단(北壇)이라고 했다. 대향전 뒤에 푸른 기와로 이은 집이 있는데 이곳은 위판(位版)을 소장(所藏)한 곳이라고 했다. 대향전 앞에 동서로 두 집이 있는데 이곳은 해와 달과 별과 그리고 바람과 구름 및 천둥과 비[日月星辰風雲雷雨]의 신위를 안치해 놓은 곳이다. 3층을 둘러보았는데 맨 위층의 뜰은 둥글고, 중간과 아래층의 뜰은 네모나 있었다. 또 수고비를 주고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니 황제의 재실(齋室)이었다. 침실(寢室)은 백옥(白玉)으로 구들을 만들고 누른 비단[黃綾]으로 벽을 발랐으며 지붕위로 둥근 구멍을 내고 운모[雲盖子]로 덮었으므로 햇볕이 방안 가득히 비치어 작은 날벌래가 날아다니는 것도 다 분간할 수가 있었다. 벽으로 막혀있는 곁방에는 백옥으로 만든 큰 통이 걸렸는데 이는 황제가 목욕하는 곳이란다. 밖에서 옥으로 만든 관을 통하여 목욕물을 끌어들이게 하였다. 나오다가 황제가 집무하는 곳[坐起處]를 보았다. 그곳에는 어탑(御榻, 의자) 하나가 누른 칠을 하여 북벽에 의지하여 놓여 있다. 뜰 아래의 동서 쪽에는 각각 온돌방이 있는데 이곳은 제관(祭官)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그리고 둘레에는 겹으로 깊은 구덩이[垓字]를 파놓았고 출입문은 튼튼하게 만들었다. 구경을 하고 나와서 도사들이 모여 사는 곳에 와서 쑥국을 곁들인 점심을 끝내고 이어서 남단(南壇)인 환구(圜丘)로 왔다.

  이곳도 3층으로서 옥돌로 둥근 누대를 만들었는데 맨 위층은 청유리(靑琉璃)로 병풍석을 만들어 사면으로 두르고, 사방으로 난 층계도 역시 유리석으로 깔았다. 이곳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란다. 서쪽으로 백 걸음쯤 되는 곳에 황궁우(皇穹宇)가 있는데 이곳에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위판(位版)이 소장되어 있으며, 명태조(명太祖)도 같이 배향(配享)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의 제도는 기둥이 여덟 개인 둥근 지붕이고 옥상에는 흑유리(黑琉璃)를 덮어서 마치 일산(日傘, 양산)을 펼쳐놓은 형태이다. 구경을 끝내자 피곤하고 힘이 달려서 서문밖에 나가 쉬었다.

  천단은 둘레가 7,8리쯤 되는 곳으로 담으로 둘러쳐 있으며 담안에는 군영(軍營)이 곳곳에 있어서 천단을 지키는 병사들이 거처하게 하였다. 정원에는 삼(杉)나무와 회(檜)나무와 백송(栢松)들을 가로 세로 각 4 장(丈)씩 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반듯하게 심었으니 매우 교묘한 솜씨였다.

  정양문(正陽門)으로 돌아왔는데 이 정양문에는 협문으로 출입하게 하였고, 이곳을 나드는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렸다. 중국의 높은 벼슬아치들도 이문에서는 모두 교자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성 남쪽에 있는 정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문밖에는 중성(重城, 겹성)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매우 튼튼해 보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쓸 비용이 없어서 술이고 밥이고 먹는 것들을 모두 동관의 주문사 일행에게 빌어먹게 되니 매우 구차스러웠다. 지단(地壇)은 천단(天壇)의 북쪽에 있는데 예로부터 사신들이 그 곳을 가본 자는 좋지 못한 결과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오므로 우리도 그런 속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어서 가보지 않았다.

*낱말  
2) 홀 : 관원이 조복이나 제복(祭服) 또는 공복을 착용하였을 때에 손에 쥐는 수판(手板). 1-4품까지의 관원은 상아(象牙)로, 그 이하의 관원은 목판으로 사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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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연행수창록>
*이날 천단에 다녀와서 지은 시임.

        『天壇周覽三律』                        李敬亭
                                           (당시 주문사의 서장관임)

1.三淸樹色隔人寰 宮鑰初開洞府寬
 五帝祠壇雲影合 九天仙闕貝光寒
 皇輿至日躬圭幣 御座常時面玉欄
 彩筆自慚于氣象 白頭重到詫奇觀

2.聖皇齊配玉皇尊 羽衛森嚴擁百神
 帝力雄奇侔造化 宸心對越體文純
 朝回絳闕圍香霧 禮罷玄壇墮月津
 器用陶匏儀尙質 講明前古在儒臣

3.嵬嵬功烈垂千古 郁郁文章冠百王
 儀取軒轅郊帝嚳 制兼壇屋象穹蒼
 群靈颯爽從歆饗 一德昭融降福祥
 不已原同純亦妙 法天要在法高皇

 ◎『천단3)을 둘러보고 율시 3수를 씀』  이 경 정

1. 삼청궁 안의 나무숲은 속세와 멀리 해 있는데
 잠겼던 궁문이 열리자 궁 안이 탁 널찍이 터졌네.

 오제의 사단에는 구름 그림자 모아져 있고
 구천의 선궐엔 오색 자개 빛 차갑게 비치네.

 황제의 수레 납시는 날, 황제 몸소 제물 바치는데
 황제 좌석은 늘 옥황상제의 옥난간과 마주하였네.

 붓으로 저 기상 묘사하려니 너무 부족함이 많지만
 머리가 흰 나이에 다시 와서 바라봄이 자랑스럽네.

2. 황제는 옥황상제와 똑같이 존경을 받는 분으로
  주변의 호위가 마치 백신들이 둘러싸듯 하였네.

  황제의 힘은 위대하여 하느님의 조화와 짝하였고
  황제의 마음은 하느님과 마주하여 순수함 본떴네.

  붉은 색 황궁의 아침은 향불연기로 에워싸여 있고
  예가 끝나자, 높은 천단 위의 달은 먼 나루에 지네.

  제사 그릇은 도자기나 바가지 같은 소박한 것들,
  옛날 유학자들이 경문에 밝혀 설명한 그대로일세.

3. 황제의 위대한 공적은 천고에 길이 전할 것이고
  황제의 빛나는 문장은 뒷날 백왕 중에 으뜸일세.

  원문에서 올리는 제사는 제곡의 의식에서 따왔고,
  천단과 집은 하늘을 본떠서 모두 둥글게 만들었네.

  여러 영혼들이 모두 바람처럼 내려와서 흠향하니
  하늘의 순일한 덕이 복 받을 조짐을 내려 보내네.

  끊임이 없다는 것은, 본래 순수한 것과 같은 것,
  명나라 시조의 뜻에 따라 이곳에 응천부가 섰네.

           『次呈三律』                          趙花川

1. 重城南陌逈人寰 地望尊嚴勢且寬
 大享 ( 殿名 ) 文窓儀物古 皇穹 ( 殿名 ) 寶宇瑞光寒
  焄蒿悽愴神應降 星斗森羅夜欲闌
 堪恨去年冬至日 龍輿親祠未親觀

2. 中國聖人稱至尊 旻天其子主群神
  洋洋如在寧容僞 蕩蕩無名本自純
  端拱九重瞻斗極 欽恭一念徹箕津
  固知時至誠因感 親祠南壇簡禮臣

3. 配祖南壇儀自古 相傳五帝歷三王
  圜丘彷彿周天象 砌色參差玉宇蒼
  老栢拱靑橫竪正 彩雲凝碧暮朝祥
  應知聖主齋醮日 念格天皇與太皇

 ◎『차운해서 경정에게 준 율시 3수』 (1624.2.3.)  
                         조 화 천

1.남쪽언덕에 겹겹이 쌓은 성각, 인가와 멀리 있는데
 지대가 높고 널찍이 차지하여 엄숙한 느낌을 주네.

 대향전의, 무늬 고운 창안엔 비품들이 예스럽고
 황궁전의, 진기한 건물은 싸늘한 빛을 비쳐주네.

 향로 향불연기 자욱하니 신은 응당히 강림할 것이고
 하늘에 뿌려져 있는 별들은 밤이 깊었음을 알려주네.

 지금도 한스러운 것은 지난해 동짓날 하례할 때에,
 천자께서 제사지내려고 몸소 납신 걸 못 본 것일세.

2. 중국의 황제를 아주 높은 지존이라고들 일컫는데
 하늘의 아들이고, 뭇 신하들의 주인이기 때문이지.

 넓고 멀리 다 내려다보니 거짓을 어찌 용납하겠나?
 거침없이 탁 트인 것은 순수한 데서 나온 때문일세.

 궁궐에서 팔짱만 끼었어도 북두성 우러러 보듯하니
 저 은하수 남쪽의 기성까지도 다 신하로 통괄한다네.

 진실로 알겠다, 정성으로 하늘이 감동된다는 것을.
 남단에서 제사지내며 신하들에겐 간결을 강조했네.

3.남단에 올라 조상을 배향하는 건 예로부터 있었는데
 상고시대 오제에서 삼황을 지나 지금까지 내려왔네.

 환구대 건물은 둥근 하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고
 섬돌의 색은 상제의 뜰을 상징하려 푸르게 했다네.

 아름드리 늙고 푸른 잣나무는 가로세로가 일정하고
 채색구름은 푸른색과 어울려 좋은 기운이 모아드네.

 마땅히 알겠다. 황제께서 재계하고 제사지낼 때에
 천황과 태황이 성의에 감동해 흠향하리라는 것을,

*낱말
5) 천단天壇 :
 1옛날 제왕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높은 누각.
 2.지명으로 북경시 정양문正陽門 밖 대사전大祀殿의 남쪽에 있으며 명明、청淸 양대  제왕이 제사지내던 곳. 지붕이 둥글기 때문에 환구圜丘라고도 함

6) 삼청三淸 : 1.천단에는 곧 도교의 삼청사상에 의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삼청궁이 있음.
             2.삼청이란 도교에서 신선이 살던 옥청玉淸、태청太淸、상청上淸으로 도교의 궁관道敎宮觀임.

*윗글 출전의 요약 소개 :
1. 뱃길로 간 북경기행 서문 일부

         --전략---

   나의 14대 조이고 인조반정의 원종공신이며 동부승지를 역임한
화천(花川) 선조는 반정후 1623년 동지 및 성절사로 제수되어 당시
청나라의 전신인 만주족이 요동지방을 점령해 있으므로 육로로 중국을
가지 못하고 저 평안도 철산의 선사포에서 배를 타고 발해를 건너 북
경에 다녀온 일을 기록한 기행문, 원제 <조천일승(朝天日乘)>은 역사
적으로도 중요한 자료일 뿐아니라 문학적 가치로도 참으로 훌륭한 작
품이다.

  곧 역사적 사실로 말하자면 대외적으로 명나라는 청나라의 전신인 후
금(後金)의 세력에 위축되어 날마다 피폐해 가는데도 그 나라 관리들은
뇌물만을 탐내는 부패의 온상이고 국내적으로는 인조가 반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힘도 없는 명나라를 등에 없고 광해군으로부터 왕위찬탈의 오명
을 벗기 위하여 중국에 왕위 인준의 절차인 봉전(封典)을 얻으려고 사신
을 보내어 1년 가까이 중국에 머무르게 하여 약소국가로서의 온갖 수모
를 다 받게 한 역사속의 이면적 사실이 이글에 소상히 실려 전한다. 예
를 들어보자면 1624년(인조 2년) 2월 24일에 명나라 황제는 조선국왕
에게 봉전이라고 내려준 칙서에 이렇게 썼다.    

  조선국왕 아무를 조정(朝廷,중국정부를 뜻함)에서 번방(藩邦)에 봉하여
국가의 경계를 호위하도록 한다. 요즈음 저 오랑캐들의 반란이 진정되지 않
았으니 너희 나라에서는 마땅히 우리와 함께 그 오랑캐들을 적으로 삼아서
 ‥‥ (중략)---

이에 소경왕비(昭敬王妃, 宣祖의 왕비 김씨)와 그 신하와 백성들의 주청에
근거하여 봉전을 허락하는 바이다. ‥‥(중략) 그리고 다음 동쪽 지방의
혼란이 수습되거든 구례(舊例)를 참고하여 우리의 훈척중신(勳戚重臣)을
특별 칙사로 보내어 이 봉전(封典)을 완결할 것이다.‥‥’

    이글의 내용으로 보면 봉전을 완전히 내려 준 것도 아니고 우선 사신
에게 칙서를 전달하고, 중국 장수 모문룡을 도와 청나라를 물리치는데 공
을 이루면 나중에 특사와 함께 봉전을 완결한다고 했다.

    또 대내적으로는 광해주 때 정인홍 일당과 함께 광해군을 옹립하는데
공헌이 큰 관계로 좌참찬의 지위까지 올랐던 이경전이 인조반정후 다시
서인들에게 동조하여 인조의 봉전을 받기 위한 주청사로 중국에 가서 1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봉전을 못 얻었다가, 중국에 가거던 주청사와 힘을 합
쳐 봉전을 얻도록 하라는 국명에 의하여 각계 요로에 진정하는 한편 주청
사가 하는 일에 도우려는 우리 화천 선조를 주문사 일행은 자신들의 공을
빼앗길까봐 어떻게 해서라도 떼어놓으려고 노력하는 것들, 그리고 공무로
써야할 돈을 주청사에게 다 빼앗기고 부하들의 개인적인 재물로 생활해야
하는 딱한 경제적 사정들이 잘 기술되어 있다.

    한편 문학적인 가치로는 바다를 건널 때에 파도속을 헤치며 배안의
상황을 묘사한 글이나 여행도중 곳곳이 펼쳐지는 풍경들을 묘사한 것, 그
리고 사신의 숙소인 옥하관에 있으면서 동쪽 별채에 들어있는 주문사 일행,
그 중에 경정 이민성 같은 분과 30운 60줄씩 또는 40운 80줄씩의 장시(長
詩)를 무려 4,5회씩 주고받은 것을 보면 그 문학적 재능을 짐작할 수가 있
지 않겠는가?

                 ---하략--

*어느 국문학자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사행일기>라고 추단한
한글 <조천일승>도 본인이 ‘국립중안도서관’에서 복사하여다가
삼성판 ‘훈민정음’워드로 고문그대로 판독하여 상기
‘고전번역작품’ 난에 올렸습니다. 이것을 보려면 훈민정음 워드라야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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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우천 조완구 선생 유언 [11] 운영자 2008-07-17 1473
64 특별 청도공 관련 사료 (1) 청계자 2011-09-02 1437
63 Re..화천공-만오당 종중 회장(조성연) 운영자 2008-12-01 1426
62 특별 한목회 족보강의 3강 [16] 청계자 2011-06-05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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