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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idi
작성일 2020-04-20 (월)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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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21.xxx.79
10만 양병설 조선왕조실록
37. 선조실록 142권, 선조 34년 10월 25일 기축 1번째기사 1601년


조수익은 아뢰기를,

근래 훈련 도감이 보인(保人)을 주는 한 가지 일을 해가 지나도록 조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감의 군사 숫자를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많아도 3천에 불과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한 장관(將官)이 거느리는 군사도 이같이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보인을 주지 못하니 외방 군사야 어떻게 모두 줄 수가 있겠습니까. 나라에 10여 만의 군사가 없고서야 어떻게 모양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군사가 많으면 보인으로 주는 정부(丁夫)도 따라서 많아지게 되는데 지금 있는 한정(閑丁)들을 모두 쇄출해 낸다고 하더라도 충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소신의 우견(愚見)에는 사천법(私賤法)이 우리 나라에만 있습니다. 하늘이 많은 백성들을 낼 적에 부여(賦與)한 것은 균일한데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귀천이 나뉘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법은 아무리 용렬한 자라도 선조(先祖)가 물려준 노비가 있기만 하면 편히 앉아 공후(公侯)의 즐거움을 누리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유(先儒)들이 ‘정전법(井田法)은 천하가 대란(大亂)을 겪은 뒤에라야 행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국세가 위기 일발의 처지여서 노비가 있는 자라도 감히 말을 못하고 있으니 중국의 법에 의거 재상 이상까지만 거느리는 가정(家丁)5)을 헤아려 지급하고 사천은 영원히 혁파하여 군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 고려 때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둘 적에 중국 관원이 사천법을 묻고 혁파하려 하였는데 그때의 군상(君相)들이 못하게 하였다고 하니, 이것은 용렬한 임금에 용렬한 재상의 소견이어서 의논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국운이 되돌아와 온갖 정사가 새로워지는 시기이니 전일의 잘못된 법규를 고수해서는 안 됩니다. 회복시키는 일을 어떻게 담소(談笑)하고 읍양(揖讓)하는 것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대대적인 거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변란이 발생한 지가 10년인데 하나도 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외환(外患)은 없다 하더라도 내란(內亂)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더구나 노추(老酋 ; 누르하치)가 우리를 엿볼 계책을 세우고 있고 남쪽의 왜적도 다시 일어날 흔단이 있어 걱정이 많은데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으니,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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