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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6-06-28 (화)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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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趙璥)

 

조경(趙璥) 영정

1727(영조 3)∼1789(정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자>경서(景瑞), <호>하서(荷棲), <시호>충정(忠定), 준

[개설]

본관은 풍양(豐壤). 초명은 준(㻐). 자는 경서(景瑞), 호는 하서(荷棲). 중운(仲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보(道輔)이고, 아버지는 목사 상기(尙紀)이며, 어머니는 임취(任冣)의 딸이다.

[내용]

1763년(영조 3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거쳐 부제학·대사성을 지낸 뒤 정조가 즉위하면서 공조참판이 되었다. 그 뒤 좌승지·승문원제조·실록청당상관·대사헌을 지내고,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민폐를 없애고 군무를 개혁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이어 지돈녕부사가 되었다가 형조판서에 올라 지경연사(知經筵事)·홍문관제학·도총관을 겸하였다. 1786년(정조 10) 우의정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임하면서, 당시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강화부에 귀양가 있던 은언군 인(恩彦君裀)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때 파직되었다가 다시 판중추부사로 기용되었다. 『문헌비고』 편집에 관계하여 학교고(學校考) 8편을 지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저서로는 『하서집』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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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향토문화백과

출생 시기/일시 1727년 - 조경 생

활동 시기/일시 1763년 - 조경 증광 문과 을과 급제

몰년 시기/일시 1789년 - 조경 졸

수학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404

성격 문신

성별 남

본관 풍양(豐壤)

대표 관직 판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경서(景瑞), 호는 하서(荷棲). 초명은 조준(趙㻐)이었으나 후에 조경(趙璥)으로 개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중운(趙仲耘)이고,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다. 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조상기(趙尙紀)이며, 어머니는 임취(任冣)의 딸이다. 형은 조경(趙瓊)이다.

[활동 사항]

조경[1727~1789]은 영조 대부터 정조 대에 걸쳐 살았던 문신으로, 도봉 서원에서 수학하였다. 1763년(영조 39)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의 권신 홍인한(洪麟漢)과의 갈등으로 유배에 처해졌다가 곧 방면되었다. 이후에도 강직한 간언을 올렸던 모습이 여러 차례 보인다. 조경은 조정에서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가 거친 주요 관직에는 예문관 검열·부제학·대사성·공조참판·좌승지·승문원 제조·실록청 당상관·대사헌·함경도 관찰사·지돈령부사·형조판서·지경연사·홍문관 제학·도총관·우의정·동지경연사·판중추부사 등 중외의 요직이 망라되어 있다.

관료로서 조경은 1771년(영조 47) 3월 24일 어사로 파견되어 기전(畿甸)의 부당한 세금 부과에 대해 조사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2월 9일 광주부(廣州府)의 민폐 3조를 건의하기도 하였다. 특히 함경도 관찰사로 재임할 때는 민폐를 개혁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1787년(정조 11) 1월 3일 역모에 연루된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에 대한 처벌을 강경하게 주장하며, 그 아들 이담(李湛)의 본명이 준(濬)인데 자신의 이름도 준(㻐)이라 음이 같다는 이유로 국왕에게 개명을 요청하여 ‘경(璥)’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해 2월 25일 은언군 처벌 주장 건으로 삭탈관직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3월 13일 다시 판중추부사로 서용되었다.

[학문과 저술]

영조 대에 『문헌비고(文獻備考)』 편집에 낭청(郞廳)으로 참여하는 등 각종 편찬 사업에도 참여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문헌비고』 편찬 사업에서 조경은 「학교고(學校考)」 8편을 지었다. 또한 『국조보감(國朝寶鑑)』 편찬에도 참여하여 정종·단종·예종·인종·경종 부분을 편찬하였다. 문집으로 『하서집(荷棲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정조가 그의 종상(終祥)을 하루 앞두고 사자를 보내 치제(致祭)하며 각별한 뜻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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